어촌에서의 삶, 한번 살아보시게요
고흥군 지죽도-죽도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활동가 손용훈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유형(2), 이 사업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2024년 5월 개소식을 기점으로 한 사이클을 돌았는데, 1년이 한 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반대로 10년 같았던 순간도 있었다.
지죽도-죽도 같은 섬마을, 그것도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외진 곳 중 하나에서 산다는 건 정말 매일매일 특별한 경험이다.
(참고로 파주에 있는 어머니를 뵈려면 차로 8시간 20분 걸린다 … 차라리 해외여행 가는게 더 가깝다.)
어촌에서 겪은 일들, 아무 순서 없이 적어본다
첫 번째:
전봇대가 넘어져 있었다. 김 양식 한다고 크레인을 몰던 청년회장이 전봇대를 박았고, 그날 하루 인터넷이 끊겨서 아무 일도 못 했다. 전봇대 하나에 하루가 통째로 멈춘다.
두 번째:
개인 휴무날 집에서 쉬고 있으면, “휴가인데 왜 안 나가냐”는 말을 듣는다. 이어서 “집 앞에 잡초 좀 나왔던데~” 하고 넌지시 알려주신다.
게으르단 말 듣기 싫어서 잡초를 매일매일 뽑는다. 그러다 보니 “손 앵커는 참 부지런해”라는 말도 듣게 됐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우리집 마당이 물에 잠겼다... 비가 많이 오면 잡초가 더.... 잘 ... 자란다.)
세 번째:
식당 가서 혼자 밥 먹으려고 하면 아는 사람을 마주칠 확률이 꽤 높다. 청년회 형들도 그래서 식당 잘 안 간다고 했다.
요즘 나도 식당 들어가기 전에 주차된 차부터 확인한다. 물론, 마주치면 맛있는 걸 자주 사주시긴 한다.
(처음에 만났을때 너무... 무서웠다) 지금은 너무 좋다.
네 번째:
반찬이 너무 많다. 포화지방, 불포화지방, 각종 나물 등등. 12첩 반상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혼자가도 15첩은 뚝딱_ 요즘에는 2인 이상 백반을 시킬수가 있어서 혼자서도 백반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잘 찾아다녀야 한다) 그래도... 12,000원에 이렇게 푸짐한 한상이 나온다니
(집 앞에 있는 식당. 12,000원이면 생선, 국, 반찬까지. 고흥 진짜 최고!)
다섯번째:
도선이랑 선외기를 자주 탄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배를 타는 듯. 도시 촌놈인 나는 탈 때마다 여전히 신기하다.
(죽도 선용수 선장님 선외기에서 한컷)
여섯 번째:
계절마다 다른 해산물을 먹는다. 여름엔 갯장어, 겨울엔 김, 봄엔 갑오징어. 주민 어르신들이 챙겨주신다.
처음엔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슬슬 해산물의 매력을 알아가는 중. 불포화지방 만세!
(이렇게 많은 문어는 처음 본다)
(매년 봄이오면 갑오징어를 엄청 많이 주신다)
일곱 번째:
‘저녁이 있는 삶’을 산다. 밤이 되면 불빛도 드물고, 개 짖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산책할 땐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 전혀 필요 없다.
(선착장이 어두워서 태양광 센서등을 설치하러 왔다)
여덟 번째:
1년 정도 살다 보니, 못 보던 차가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된다.
도시 촌놈이 오면 티가 난다. 확실히 난다.
(우리 마을을 찍고 싶어서 방송국에서 계속 오신다. 우리 마을이 좋긴 좋아)
아홉 번째:
밤 10시면 졸리고, 아침 6시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 공기도 좋고, 먹는 것도 좋아서 몸이 건강해지는 걸 체감한다.
심지어 불포화 고단백 식단이니까… 이러다 130살까지 사는 거 아닌가 싶다.
마지막 열 번째: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면서도 못 느꼈던 것들이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룰이 있다. 그걸 무시하고 내가 옳다고 우기면 잘될 것도 안 된다.
현장 활동가는 단순히 현장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을 구성원이자 가족이고, 필요한 일꾼이다. 현장에서 배우고, 실수하고, 성장하는 ‘여러 과정’이 바로 이 일이 가진 매력이다.
몇 가지 쓰다 보니 열 가지를 채우고 싶어서 막 적었다.
(해양쓰레기 정화활동중에 한컷) 해양오염이 정말로 심각하다
어촌마을에서의 삶이 궁금하다면, 언제든 도전해볼 기회는 있다.
어디서든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그게 어촌살이의 진짜 매력이다.
어촌에서의 삶, 한번 살아보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