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어촌살이가 막 1년을 지났다. 
운전을 하게 되고, 텃밭이 있는 마당이 생겼고, 토끼와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으며,
계절에 따라 먹거리와 놀거리를 찾게 되었다는 점 등 돌이켜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날씨를 검색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바람의 세기와 물때에 따라 바다 일이 정해지기 때문에, 바쁜 바닷가 주민들과 만나고자 하면  
바다에 나가 일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날씨의 영향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 바람이 영 잘 분다." 자주 듣게 되는 이 말을 번역하자면 "오늘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분다" 정도의
의미이다. 처음에는 '잘'이라는 표현이 바람이 많이 분다는 부정적인 의미(어민들이 일할 수 없기 때문에)와
어울리지 않다고 느껴져 어색했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오늘 바람 잘 부네요~ 하고 말할만큼 자연스러워졌다.    
1물 2물 3물 조금 사리 같은 말들을 알아 듣고, 바람 잘 부는 날 풍향과 풍속을 살필 줄 알게 되었고, 
보트 자격증도 따서 가끔 배 운전도 하고, 어촌의 언어와 생활을 배우며 어촌앵커구성원으로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아 혼자 뿌듯하기도 하다.

 

 

비오고 춥고 흐린 날씨가 싫어서 남쪽으로 온 나는 기분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해가 쨍하고 하늘이 파랗기만 해도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동네 분들에게 이런 얘길 하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 비 오는 날이여." 였다.   
이유인즉슨, 주로 야외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어촌에서 비오는 날은 그나마 모두가 일을 쉴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봄비라기엔 조금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던 며칠 전, 쌀쌀한 날씨에 온몸에 비를 쫄딱 맞고 마을 회관에 서계신 동네 할머니께

타월을 가져다 드리고 손난로 하시라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어드렸다.

할머니는 연신 아심찮다 아심찮다 하셨고 이장님을 통해 그말이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전라도 방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렴풋이 마음으로 느꼈던 말의 따뜻한 온기가 마음깊이 전해졌다. 고맙다는 뜻이라는 것을. 

 

<안심찮다 (安心찮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의 전라도 방언>

 

이곳에는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는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  

짐 나르는 것을 도와드린 다음날 다음날 큰 비닐이 터질만큼 꾹꾹 담아다주신 상추와 오이에서도 
바다에서 막 잡았다고 주시는 물고기와 새우에서도, 김치와 반찬들이 가득담긴 반찬통에서도
마을에 와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뭉클하게 느껴진다.  
마을은 이렇게 작은 도움 하나도 둘, 셋이 되어 돌아오는 '정'다움이 가득한 곳이다.  
들어오기 전에는 텃세와 갈등을 염려하는 시선이 먼저 보이지만, 안에서는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고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오늘 고흥 날씨는 매우 맑다. 다가오는 여름이 기대된다.  

 

-고흥 취도에서 신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