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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너는 왜 그렇게 차갑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실제로 잘 울지도 않았다.

수련회 때 엄마보고 싶다고 친구들이 울고 있으면 눈만 말똥말똥 뜨고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고흥에 내려오고 나서는 자꾸 눈물이 난다. 감정이 풍부해진 건지, 이 고장의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게 만든 건지 잘 모르겠다.

 

 

입사한 지 딱 5개월, 3월 17일부터 시작된 내 일 가운데 가장 큰 행사가 바로 갯장어 샤브샤브 품평회였다.

처음에 “갯장어 샤브샤브 밀키트를 만들자”는 말을 들었을 때,  동공이 흔들렸다.

갯장어도 안 먹어봤는데, 그걸 샤브샤브로? 게다가 밀키트로? 도대체 어떻게?

소장님이 내 표정을 눈치채셨는지, 우리를 녹동항으로 데려가셨다. 거기엔 장어거리라는 게 있었다.

부산에서 살아온 내겐 낯선 풍경이었다.

끓는 육수에 갯장어 한 점을 넣으니 꽃처럼 피어나고,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그 순간 알았다. “아, 그래서 이걸 밀키트로 만들자고 하셨구나.”

 


밀키트 준비의 시간

 

머릿속은 온통 밀키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사업자등록증도 없고, 시설도 없었다. 못 할 이유가 먼저 보였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해보자는 심정으로 구성안을 짜고, 포장 용기를 고르고, 띠지를 만들었다.

어촌계장님이 계셔서 다행이었다. 직접 가게에서 함께 샤브샤브를 끓여주시며 방향을 잡아주셨다.

 

“판매보다 먼저, 주민들과 레시피를 만들어보자. 그게 길이다.” 그 말이 크게 와닿았다.

육수는 계장님 어머님이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고아주셨다.  그 정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가장 큰 난관은 장어 손질이었다. 수십 인분을 어떻게 다듬지?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데 답은 곁에 있었다. 노인회장님, 시인 어르신, 장로님… 매일 마주치는 어르신들이 사실은 다 전문가였다.

우리는 우리를 ‘갯장어 발골단’이라 불렀다. 내가 어르신들을 우리라고 부르게 되는 순간.... 그때 진짜 마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 회의를 했다.

 

“이 도시락, 600g이 아니라 1200g은 들어가는 거 아녀?”
“많이 주면 되지! 우리 밀키트는 푸짐해야제.”

어르신들은 나를 보며 말했다.
“앵커 아가씨 덕분에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어. 부담스럽지만 기분 좋은 부담이야. 우리 마을 장어, 제대로 알려야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위기의 순간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그런데 행사 하루 전날, 소장님이 크게 다치셨다. 팀은 멘붕에 빠졌다.

“소장님 없이 내일을 어떻게 버티나?” 사무실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때 염포의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내일 아침에 갈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작은 말 한마디에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 울보가 되어버렸네.....

사실은 병원에 가는 걸 돕겠다는 말이었는데,  오해했다. 뭐 어때 도와준다는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도와준다고 말해주는 걸까?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해준 적이 있었나?

이곳은 왜 자꾸 서로를 돕게 만드는 걸까.

눈물이 쏟아졌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멈추지 않았다. 도와주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라서, 더 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날의 행사장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자동으로 굴러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발골단 어르신들은 무대위에서 능숙하게 칼질을 했고, 시인 어르신은 장어를 노래처럼 소개했다.

계장님 어머님은 바닥에 앉아 양파와 마늘을 다듬으셨고, 고흥의 다른 앵커 동료들은 야채를 씻어주었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단 마음 뿐이었다.


 

절반의 성공

 

갯장어 밀키트가 완벽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손이 많이 가고, 가격 경쟁력도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주민들이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는 거였다.

 

눈물을 흘려서 조금 민망스럽긴 했지만
함께라서 가능하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가 이미 해냈다는 자부심을 얻었던 행사였다.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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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영화의 한장면 같은 장어다듬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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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갯장어 발골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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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시더니 무대에 올라가니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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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더 테레사 춘덕어머님 "이제 떠와서 일하기 싫어" (떠와떠와-덥다덥다라는 뜻)라고 하시더니

바닥에 자리잡고 마늘과 양파를 써셨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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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발골단이 직접 맛있게 먹는 법까지 알려주니 누구든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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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 장어킬러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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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들이 싸주신 쌈덕에 밥굶지 않고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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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제대로 못먹고 행사를 도와주신 금진항, 염포항, 취도-사도 앵커조직 식구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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